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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분열
한국개신교의 역사에 대해...
막연히, 몇가지 사건과 논쟁점을 평면적으로 알고 있다..(종교학시절에 주워들은 얘기들)
즉,
기장과 예장의 분열(김재준 퇴출) - 그 이면에 있는 친일논쟁, 성서무오주의 비판.
변선환의 퇴출(감리교) - 종교적 다원주의
서남동, 안병무의 민중신학(기장)

개신교교의 분열과 통합의 문제에 있어서 실상 문제는 목회자들인듯.
신자들과 얘기해보면, 아예 개념이 없다.
심지어는 카톨릭과 유대교를 동일시하고, 다른 종파에 대해서는 무지/무관심/경멸할뿐...

예장만 하더라도, 통합/합동/고신/대신/재건파 등 수백가지 파벌로 나뉘는 건 ...오로지, 목회자의 출신성분때문인듯...


18. 신학의 발달…3갈래 흐름








1930년대 감리교신학교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찍은 사진.30년대 감리교신학교에는 한국의 조직신학을 체계화 한 정경옥교수가 있어 명강의를 들을수 있었다.기독교가 한국에서 성장하던 시기는 19세기 구한말 부터 일제의 식민시대를 거쳐 해방과 독립,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요동기였다.한국신학의 발달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전개되어 왔으며 국가 민족 문화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민족적 위기를 겪으면서 신앙과 교회 사상의 형태가 결정됐다.

유동식박사는 “한국교회는 모두 민족적 운명을 염려하고 그 구원의 길에 참여하려고 노력하면서 세가지 방향으로 움직여 나갔다”고 분석했다.첫째는 개인의 영적구원과 희망에 중점을 둔 교회의 내적운동이고 둘째는 현실의 고난과 부조리를 극복해 나가려는 외향적 신앙운동이며 셋째는 한국의 전통문화및 종교와 기독교 복음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문화전체의 의미와 구원을 모색하는 신앙운동이었다.이 세가지 신앙운동은 다시 세가지 신학의 흐름으로 전개되어 보수적 근본주의신학,진보적 사회참여의 신학,문화적 자유주의의 신학으로 나타났다.

보수적 근본주의신학은 하나님 중심주의의 신학을 말한다.하나님의 절대성이 강조되고 성서의 무오설이 대전제이다.따라서 성서의 모든 비판적 연구를 배격한다.초월성과 절대성만이 강조된다.

이 신학사상의 대표적인 인물이 박형룡이다.박형룡은 1897년 3월28일 평북 벽동군 운서면 운아동에서 출생했다.신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장로교 계통의 신성중학교 평양숭실전문을 졸업했고 중국 남경의 금릉대학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에서 신학석사,루이빌의 남침례신학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0년 승동교회 전경.조선사람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신학교는 종로2가에 있는 승동교회에서 개교됐다.
그는 장로교총회로부터 표준성서주석위원장을 맡아 9권의 표준성경주석을 펴내고 역저 ‘교의신학’을 집필했다.박형룡은 1953년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입장에서 장로회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는데 이때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교회 신학의 수립이란 결코 우리가 어떤 신학체계를 창작함이 아니라 사도적 전통의 정신학을 그대로 보수하는 신학,우리 교회가 70년전 창립되던 당시에 받은 그 신학을 우리 교회의 영구한 소유로 확보함을 말한다”

그는 선교사에게서 받은 신학을 지키며 ‘청교도적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낳았다.이때문에 그를 가리켜 한국 칼뱅주의 신학의 기수요 보루라고 한다.박형룡의 신학을 이어 받은 대표적인 교단이 예장합동 고신 개혁 등 보수 교단들이다.

진보적 사회참여신학은 ‘삶’을 사회적 살림살이를 통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실현하려는 신학이다.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의 사건(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부할)은 바로 이러한 삶의 역사적 실현이다.따라서 성육신의 사건을 복음의 핵심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정의를 위한 예언자적 참여가 뒤따랐다.

이러한 신학적 전통을 낳은 대표적 인물이 김재준이다.김재준은 한국 진보주의 신학의 기수로 불린다.1901년 함북 경흥군 상하면에서 태어난 그는 송창근목사의 전도를 받아 일본 아오야마학원 신학부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숭인상업학교 교사로 재직중 그는 평양신학교의 기관지 신학지남에 모두 6편의 논문을 발표,필화사건을 일으켰다.‘욥기에 나타난 영혼불멸과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연구’라는 논문인데 동정녀를 방년의젊은 여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신학의 발달은 한국사회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신학노선의 차이,교권투쟁으로 인해 교단의 분열을 가져왔다.1959년 예장통합과 예장합동이 분열되는 모습.
그는 1945년 조선신학교가 서울 동자동에서 새출발을 하자 교장에 취임하고 조선신학교의 신학이념을 발표했다.그것은 첫째 조선교회가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세계수준에 도달할 것,둘째 신학교는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운 연구가 보장되어 가장 복음적인 신앙에 도달할 것,셋째 교수는 학생들의 사상을 억압하지 말 것,넷째 칼뱅주의신학의 정당성을 재확인할 것 등이다.이 이념은 조선신학교의 모든 교수들의 공통된 교육이념으로 오늘까지 한신대학교에 남아있다.

김재준은 1947년 평교수로 구약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쳤다.구약성서의 역사비평과 문서비평을 가르치고 모세오경의 저작문제와 십계명의 배경에 관한 학설을 소개해 신학논쟁을 불러 일으켰다.이 사건이 조선신학교문제로 확대되고 심한 신학논쟁과 교권행사를 거쳐 1953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분리되는 최초의 교단분열을 가져왔다.

문화적 자유주의신학의 흐름은 기독교의 보수적 서구전통에 매이지 않고 한국의 전통사상과 기독교사상과의 조화를 모색하려는 토착화 신앙운동으로 전개된다.따라서 수시로 변천하는 현실사회를 넘어 한국의 재래종교와 기독교의 만남의 문제를 신학의 주요한 과제로 다루고 있다.역사(歷史)의 전체를 통해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을 보려는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이다.

문화적 자유주의 신학에 초석을 놓은 사람이 최병헌이다.최병헌은 185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몰락한 양반가문의 빈한한 집에서 태어나 청강 독학으로 공부했다.그는 윤치호의 소개로 미감리교선교사 존스의 어학선생을 지냈으며 한문성서를 가지고 성서연구에 혼신을 다했다.그는 세례를 받은뒤 4년동안 스스로 성서를 읽고 진리를 깨우쳤으며 1900년부터 정동교회에서 시무했다.그는 한국 최초의 기독교신문인 ‘조선크리스도인 회보’를 아펜젤러와 공동으로 창간하고 한국 최초의 신학잡지 ‘신학월보’를 간행했다.

최병헌은 1912년 문학적 행태를 지닌 비교종교론적 변증으로 기독교 진리를 설파한 ‘성산명경’을 출판했고 종교와 정치의 밀접성,서양의 기독교융성과 부국을 역설했으며 탐관오리를 날카롭게 비판했다.1916년 창간된 신학월간지 ‘신학세계’ 편집진으로 참여,종교변증론을 5년간 집필했는데 이것을 모아 ‘만종일련’이란 책을 펴냈다.

이것이 한국교회 초기의 대표적인 비교종교학적 선교신학으로 평가받는다.그는 모든 종교를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안에 있는 문화현상으로 보았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종교의 도달점이며 완성이라고 했다.타종교와의 대화를 통해 한국신학의 토착화에 문을 연 그의 신학은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 등 감신대계열의 학자들에 의해 이어졌다.

한편 신학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신학노선의 차이,교권다툼으로 이어지고 교단의 분열을 가져왔다.

/이승한 shlee@kukminilbo.co.kr
19. 분열과 극복








1959년 9월 24일 대한예수장로회 44회 총회가 열렸던 당시 대전중앙교회, 환영아치는 선명하지만 이 총회에서 연동측(예장통합)과 승동측(예장합동)으로 교단이 분열됐다.1885년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지 1백14년,우리나라는 기독교 복음에 의해 엄청난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다.신교육으로 가치관과 인성이 변화됐으며 유교신분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설 수 있었다.유능한 인재들이 교회를 통해 배출되고,그들은 유학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에 공헌했다.

교회는 또한 독재정권에 항거해 민주사회를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했다.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와 독재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교회는 그래도 사회의 소외계층과 억압된 자의 대변자 노릇을 했으며,정의의 칼날을 세워 공동체의 평화와 평등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한몸인 교회가 분열됨으로써 교파주의와 이기주의,물신주의,성공주의,성장제일주의 등 세속화의 부정적인 길을 열어 놓은 것은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분열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90년대 들어와 급속히 확산됐으나 아직은 결실이 미미하며 21세기 한국교회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게됐다.






교회의 분열을 극복하고 일치와 연합을 위한 노력들이 90년대 들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13개교단 대화마당.



지난 5월 왕성교회에서 열린 한장련의 교회일치예배. 장로교단의 대표들이 일치를 다짐하며 성찬을 나누고 있다.
◆분열=해방이후 한국교회는 일제의 억압으로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크게 네 갈래의 입장으로 갈라진다.하나는 교회의 정통이 일제의 강요에 따라 신사참배나 일본 기독교조선교단으로 편입됨으로써 패멸되었다고 보고 그 이전의 순수 정통성을 회복한다는 운동이다.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옥에 갇혔던 인사들이 해방후 출옥,교회재건에 나선다.바로 재건파교회이다.이들은 극우파로 기존교회를 거부하고 46년부터 별도의 교회를 설립하기 시작했으며 북한에서는 김린희전도사(선천),남한에서는 최덕지전도사가 중심인물이었다.재건교회는 곡간등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해 곡간교회라고도 불렸으며 평신도들이 많이 참여해 주상수 강상은 염애나 등이 평신도의 대표적인 인믈로 부상했다.

다른 하나는 기성교회의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면서 교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었다.당시 80%의 교회들이 바로 이 운동에 참여한다.또 다른 하나는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지만 하나로 통합되었던 한국교회를 교파로 분열시키지 말고 그대로 지속하자는 운동이었다.그러나 일제하의 교회에 대한 윤리적 신앙적 자책과 회개의 심도가 있느냐는 비판이 일면서 감리교가 회의에서 퇴장하면서 무산됐다.

마지막으로는 기성교회에 들어가 회개를 촉구하고 개혁을 해보자고 했던 중도우파의 운동이다.이 가운데 혁신복구파로는 이기선목사가 북한에서 활동했고 남한에서는 한상동 송양원 주남선목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남한 인사들은 고려신학교를 만들어 경남노회를 통해 회개를 촉구했다.

이처럼 네 갈래로 대립되었던 한국교회의 입장은 결국 교단의 분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기성교회의 질서에 들어가 회개를 촉구했던 장로교의 혁신복구파들은 수에서 밀려 추방당하는 형태로 1948년 장로교단에서 분열됐다.이들이 현재 예장고신과 예장고려교단이다.

1940년 조선사람들에 의한 신학교육을 표방하며 승동교회에서 시작된 조선신학교는 1948년 김재준의 성서해석학 등 신학논쟁으로 갈등을 겪다가 195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대구총회에서 김재준 송창근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정죄를 당함으로 교단에서 탈퇴했다.이들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의 김재준을 중심으로 교단을 창립했다.이 교단이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이다.

신사참배의 회개를 촉구하던 인사들을 축출하고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자들을 쫓아낸 장로교단은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등 에큐메니컬 노선의 차이로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전중앙교회에서 치러진 44회 총회에서 갈라선다.WCC가입을 지지했던 인사들은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했다.이 총회가 장로회신학대 출신의 인사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이다.WCC가입을 반대하고 복음동지회(NAE)운동에 찬성하는 인사들은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했다.이 총회가 총신대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다.

50년대 세계 냉전체제의 구도속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공산주의의 종주국 러시아정교회가 가입되어 있는 WCC의 가입을 둘러싼 의견차이로 분열되어 결국 한반도의 분단과 함께 냉전체제의 피해자로 전락했다.

신학적 차이로,또한 이념적 차이에 따라 3개교단으로 분열됐던 장로교는 1979년 교권과 지역갈등으로 예장합동교단에서 정규오목사를 중심으로 한 호남권 인사들이 탈퇴,개혁교단을 설립하면서 핵분열을 일으켜 한국교회 분열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만다.

교단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은 80년대 후반에 들어와 활발해지면서 한국장로교협의회가 결성됐으며 이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로 개칭되어 장로교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또 13개교단의 목회자로 구성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98년 결성됐으며,평신도들도 한국장로회총연합회를 만들어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승한 shlee@kukminilbo.co.kr
by 벌레 | 2004/08/09 15:34 | 몽중설몽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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