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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황지우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내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이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

어젯밤 낭송의 발견에서 오지혜가 읆던 황지우의 시...
기형도가 "힝을 넣어가며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고 말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맥락의 환멸이다.

신학이란 철저한 무신론에서 출발해야하고
사랑이란 지독한 에고에 기초해야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그렇지만, 요령없이 자신의 에고에 갖히거나
가식적으로(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만...) 에고를 버린척하다가 지쳐가며 늙어간다.
위악 혹은 위선이 스스로의 삶의 방식으로 굳어간다.

자칫 위악은 또다른 자의식의 쾌감으로 작용하고
위선은 세상에 대한 중용이라 세뇌한다.
by 벌레 | 2004/10/28 15:39 | 몽중설몽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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